낭서고택

낭서고택 마루에 나서면 텃밭과 감나무,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등이 어우러진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오솔길의 우거진 숲 사이를 새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걸어가면 세상의 묵은 때가 다 씻겨 가는 듯하다.

CONTACT INFO
  • 주소: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150번지 (죽정마을)
  • 전화: (061) 472-0070, 010-3114-1313
  • Email: choi2001-40@hanmail.net
2004-10-07 08:13 국민일보 2004/09/24 추석특집기사

[추석달 문화공연에 한옥체험]


광주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나주를 거쳐 30분쯤 달리면 영암이다. 영암읍에서 구림마을까지는 승용차로 10분. 서해안고속대로 목포IC에서 2번 국도를 타고 강진 방향으로 달리다 819번 지방도로 바꿔타면 구림마을이 먼저 나온다. 영암군
과 이화여대박물관은 추석인 28일 밤 7시부터 영암공원 광장에서 '고향 추석달의 운치와 흥'이라는 주제로 '월출산 달맞이 추석 공연'을 갖는다. 마성혁 오혜연 김진정 임봉금 등 '월출산 달빛을 사랑하는 국악인 모임'이 출연해 민속합주,판소리,무용,사물놀이 등 다양한 공연을 갖는다(02-3277-3152).
구림마을엔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집이 75가구나 된다. 이 중에서 340년 전에 지어진 안용당은 '남도민박 베스트 50' 중 1번으로 선정된 고가로 월출산에서 솟은 보름달이 아름답다. 방마다 화장실과 목욕탕,싱크대 등의 시설도 갖춰 한옥의 불편함을 덜었다. 하룻밤 숙박료는 2인1실 3만원(061-472-0070).
.....................................................................................
달이 뜬다. 보름달이 뜬다.

1600여 년 전 백제의 왕인 박사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서호강으로 가는 길에 월출산 문필봉 기슭에 자리 잡은 정든 고향과의 작별이 아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는 구림마을의 돌정고개에도 쟁반처럼 둥근 달이 솟는다.
  
헤아릴 수 있는 역사만 2200년이라는 전남 영암의 구림마을은 가마터 등 선사시대의 유물과 조선시대의 마을길,그리고 500년 전통의 대동계가 연면히 이어져오는 전통마을로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나 다름없다.구림마을 여행은 서구림에서 동구림리의 왕인박사 유적지 입구까지 고택들 사이로 황토담이 단장되어 있는 왕인문화거리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이곳은 요즘도 월출산 천황봉 위로 달이 뜨면 이웃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밤을 하얗게 새는 고샅이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구림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과 달리 잘 정돈된 민속촌은 아니다. 조선시대 고택과 어울리지 않는 양옥집이 들어섰는가 하면 일본식 목조주택과 새마을 운동의 산물인 블록집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구림마을에서 역사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은 마을 구석구석에 영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연대기 순으로 오롯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돌정고개와 연결된 조선시대 골목에서 마을을 남북으로 가르는 구림천의 멋스런 무지개 돌다리를 건너면 수령 400년의 노송에 둘러싸인 회사정의 웅장한 자태가 구림마을이 꽤 뼈대 있는 마을임을 말해준다. 회사정은 구림마을 대동계의 집회소로 그 많던 향약이 다 사라진 오늘날에도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는 터전이다.

구림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보려면 회사정 인근의 영암도기문화센터를 찾아야 한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옹관과 구림도기,그리고 구림도기 가마터 등이 전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도기제작 체험도 가능하다. 인근엔 10여개의 가마터가 1㎞에 걸쳐 널려 있어 발끝에 채는 도자기 파편에서 옛 도공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구림마을 여행의 매력.

왕인 박사가 떼배를 타고 출항한 곳으로 추정되는 서호강의 상대포는 지금은 아담한 호수로 변해 옛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상대포엔 크고 작은 선박이 드나들었으나 몇 차례에 걸친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영산강과 연결된 수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호수 한 켠의 검은 바위는 왕인 박사가 일본행 배를 탔던 나루로 추정되는 곳으로 몽햇들 너머로 해가 지고 나면 호수에 비친 월출산의 달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달은 월출산 천황봉에서만 뜨는 것이 아니다. 깨금발을 하면 장독대나 텃밭 등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골목길에도 달이 뜨고 토담 안의 감나무 가지에도 홍시처럼 농익은 보름달이 주렁주렁 열린다.

낭주 최씨의 정자인 호은정의 노송 가지에 걸린 달이 남성적이라면 구림천을 흐르는 보름달은 달은 여성적이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노송 가지 사이로 흐를 때마다 그윽한 묵향이 묻어나고 물결 따라 이지러지는 보름달의 잔영은 가야금 소리처럼 애절하다. 죽정서원 대숲에서 뜨는 보름달엔 영암 선비들의 풍류가 녹아 있고,구림교회의 녹슨 종탑에 걸린 보름달은 은은한 종소리처럼 세상을 밝힌다.

영암의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월출산을 오르던 보름달이 어느새 천황봉을 은은한 달빛으로 감싸면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둥근 달이 뜬다’로 시작하는 영암아리랑의 흥타령처럼 구림마을엔 남도의 흥과 함께 애절하면서도 힘이 실린 가야금 산조의 선율이 흐른다.

=글·사진 박강섭기자 kspark@kmib.co.kr

From 최복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