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서고택 마루에 나서면 텃밭과 감나무,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등이 어우러진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오솔길의 우거진 숲 사이를 새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걸어가면 세상의 묵은 때가 다 씻겨 가는 듯하다.
2010년 5월 4일 동아일보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504/28069623/1
향토돌담-전통 기와집 등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주민 3분의 1 한옥 거주… 민박하려면 한달전 예약해야
전남 영암군 군서면 월출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구림마을. 삼한시대부터 22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마을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전통 기와집과 아담한 정자, 황토 돌담과 가마터 등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어사 박문수와 명필 한석봉 등에 관한 옛 이야기와 전설이 녹아 있는 ‘스토리의 보고’다. 주민자치조직인 향약 대동계(大同契)가 45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구림마을은 역사 인물을 소재로 축제를 개최하고 한옥을 주제로 건축박람회를 여는 등 옛것에서 농촌의 희망을 찾고 있다.
○ 2200년 전통 간직한 한옥의 고향
구림마을 돌담을 끼고 돌다 도갑사 올라가는 길목에 들어서면 단아한 모습의 전통 가옥이 눈에 띈다. 340년의 역사를 간직한 ‘안용당(安容堂)’이다. 서까래와 쪽마루, 구들장이 있어 한옥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낭주 최씨 19세손부터 살아온 이 집은 2004년부터 민박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인 최복 씨(71)는 “황토 구들장에서 하룻밤을 자려면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며 “아궁이에서 소나무 잡목을 태우는 냄새가 좋다며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구림마을은 백제시대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 박사와 풍수지리 대가인 신라 도선국사를 배출한 곳이다. 오랜 역사 때문에 마을에는 가가호호 스토리를 가지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다.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가 글쓰기와 떡썰기 시합을 한 곳이 바로 이 마을이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은 스승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와 마을에 있는 죽림정사에 머물며 글씨를 배웠다.
구림마을 대동계는 마을 규약을 어기는 사람을 훈계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을 합치면서 450년 넘게 이어져왔다. 집회장소인 ‘회사정’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거지꼴로 찾아와 마루에 앉자 꼿꼿한 성격의 계원들이 마루판자를 뜯어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대동계원 최재형 씨(81)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살다보니 규율이 엄격하고 회원도 8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지금도 대동계원이라면 자녀들이 시집 장가 갈 때 더 이상 물어보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 옛것과 새것의 아름다운 조화
구림마을은 전체 517가구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180가구가 한옥에 살고 있다. 2006년 전남도로부터 한옥보전시범마을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한옥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지난해 한옥 30채가 완공됐고 현재 10채를 신축하고 있다. 영암군은 구림마을 인근 9500m²(약 2878평)에 주거변천사 한옥체험장을 짓고 있다. 고려 말과 조선시대 초·중·말기의 시대적 특성이 드러나는 기와집, 초가 형태의 민가 등 16채를 2011년까지 짓는다. 이정훈 영암군청 문화관광과장은 “한지와 황토 등 자연소재로 하고 지붕 선과 담, 문살 등을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꾸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음식문화체험관은 지난달 준공됐다. 국토해양부의 한옥도시건축 공모에서 최우수 사업으로 뽑혀 국비를 지원받았다. 연건축면적 330m²(약 100평) 규모의 전통 한옥 구조다. 7월부터 남도 한정식과 사찰음식 등을 선보인다.
매년 봄과 가을에 왕인문화축제가 열리는 구림마을에서는 올해 10월 26일∼11월 1일 국내 처음으로 한옥건축박람회가 열린다. 한옥 시공 업체들이 한옥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을 짓고 공정별 시연회를 연다. 한옥에서의 민박은 물론 목재를 조립하거나 황토 벽돌을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1주일 동안 관람객 30만 명을 유치하는 게 목표. 최남호 왕인촌 주민자치회장(64)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로 살아가고 있다”며 “영남을 대표하는 안동 하회마을 못지않은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영암=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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